‘난 저녁형 인간이 분명해’
나는 어려서부터 내 자신이 저녁형 인간임을 굳게 믿고 살아왔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밤 10시가 되면 정신이 또렸해지는 것을 자주 경험해서 중요한 공부나 작업을 저녁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쩌다가 동기부여 컨텐츠(지금은 YouTube지만, 예전엔 블로그 글 등)를 보고 생활 패턴을 아침형으로 바꿔보려 시도하는데, 일주일을 못가 컨디션만 망가진채 다시 원래 패턴으로 돌아간 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수많은 패턴 변화 실패 속에도, 결혼도 하고 박사과정도 끝마쳤기에, 나는 저녁형 인간으로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아침형 인간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완벽하게 지울 수 없었다.
‘아기한테 배우는 아침형 라이프’
하지만 진짜 최근, 몇 달 사이에 내 생활 패턴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우리 귀염둥이 아기의 탄생이다. 이 친구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밤에 중간 중간 일어나 밥을 달라고 울어서 생활 패턴을 흐트러 놓았다. 하지만 몇개월이 지나고 이 친구가 통잠을 자며 규칙적으로 5-6시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특한게 새로운 패턴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빠를 배려해서 먼저 일어나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기다리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면 큰 소리로 울면서 밥을 달라 보채는데,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어떤 알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적당한 양과 온도로 분유를 탄 후, 다 먹을 때까지 분유가 흐르지 않게 신경을 써줘야한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나면 잠이 다 깨서 잠에 다시 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지만, 우리 아기에게 아침형 라이프를 배우게 될 지 몰랐다.
‘미국은 밤 9시면 심야’
내 아침형 라이프를 가능하게 해준 두 번째 이유는 미국 생활로 전환이다.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할 때 하남에 살았었다. 아파트가 하남 스타필드와 가까워서 자주 산책을 갔었는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스타필드를 걸으며 시간을 보낸적이 많다. 여러 스토어를 둘러보며 트렌디한 상품들을 자주 업데이트하는 재미가 있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공간이라 아내와 함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넘어오니, 특히 내가 있는 동네는 저녁 시간에 딱히 나가서 놀만한 곳이 없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조금 다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해진 후에 돌아다닐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요즘 같이 겨울이 되니 해도 일찍 져서 저녁시간에 집 밖에 나가는게 더욱 꺼려진다. 덕분에 아기가 잠드는 7시에서 8시 이후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도 잠드는 패턴이 익숙해졌다. 예전처럼 밤에 늦게 잠들었으면, 아침에 일어나 아이 분유를 타주며 체력만 상했을 것이다. 미국에 와서 일찍 잠들다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크게 힘들지도 않고 오히려 내가 원래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나 착각할 정도다.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직 이런 생활을 지속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단히 효율적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것 같다. 하지만 예전처럼 혼자 살아갈 때는 이런 패턴을 지속할 동기부여가 많이 없어서 매번 원래 패턴으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오후 시간에 일찍 퇴근해서 육아하는 와이프를 도와주려면 지금 같은 생활패턴을 지속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이 패턴으로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제 나름 아빠로 살아가는데 주어진 일들을 더 많이 감당하기 위해서 이 패턴이 더 좋지 않을까 짐작한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화장실에서 씻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예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출근할 때 드라이 안하고 감기 걸려 온다고 잔소리를 자주 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참 드라이하기 가족들에게 미안하더라. 잠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한 아내, 밥 먹고 다시 눈을 비비며 졸린 티를 내는 아기를 바라보며 나 하나 출근하겠다고 요란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는 없다.
‘아침형 인간에 필요한 2개의 기둥: 동기부여, 그리고 이른 취침’
결국 아침형 인간으로 사는데 가장 필요했던 2가지는 강력한 동기부여와 이른 취침 시간이었다. 저녁형 인간에서 억지로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순간들을 돌아보면 항상 저 둘 중 하나가 없었다. 동기부여가 없던지, 이른 취침이 보장되지 않던지. 내 삶에 이 두 친구가 찾아오자 내 자신도 모르게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만약 당신도 아침형 인간으로 패턴을 변화하고 싶다면 이 두 가지를 돌아보라. 아마 동기부여가 없던지, 이른 취침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현재의 패턴대로 살더라도 매일 발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면 굳이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지는 마라. 아마 이 두 조건이 맞춰지는 순간 내 자신도 모르게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테니까.